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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

석유이야기

1870년 록펠러는 미국 클리블랜드에 오하이오 스탠다드 석유회사(하루 600배럴 생산으로 미국 시장의 4%를 점유한 최대 정유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정유업의 성공은 철도운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강력한 거대 화주가 되어 철도회사를 압도하기 위해 잇따라 정유공장을 흡수•합병하여 정유 기업집단을 이룩하였다. 수 년 후에는 송유관과 철도화차까지 매입함으로써 1882년 미국의 원유정제 및 판매시장의 90%를 독점하는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로 성장하였다. 원유의 생산, 수송, 정제에 이르는 모든 사업을 관리•통제하는 일관체제를 갖고 있는 거대기업을 트러스트라고 부른 것은 스탠다드 석유회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러스트라는 말은 점차 나쁜 의미로 변질되었고, 이 회사의 성장은 근대 석유산업 성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스탠다드오일 트러스트는 1911년 반트러스트법에 의해 34개 회사로 분할되었는데. 이 때 분할된 일부 회사가 엑슨, 모빌 등으로 발전했다. 또한 1901년 미국 텍사스주 스핀들 톱 지역에서 하루 10만 배럴을 생산하는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어 후에 걸프와 텍사코라는 석유회사의 탄생을 가져왔다.

유럽에서는 1890년 로얄더치 석유회사가 등장하여 석유산업의 국제화가 이루어졌다.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로얄더치는 1907년 수송 및 판매부문을 전담하던 쉘 운수무역회사와 합병하여 로얄더치쉘이 되었다. 중동지역 최초로 이란에서 석유를 발견한 영국인 다아시는 페르시아 왕국으로부터 60년간 배타적 조광권을 획득하고 1908년에 페르시아석유회사를 설립했다. 동사는 1954년 이란의 석유 국유화 분쟁 시 회사명을 BP(영국석유회사)로 변경하였다. 이처럼 세계 유전지역을 기반으로 석유기업들이 탄생하여 석유메이저로 성장하게 되었다.





□ 메이저

메이저(International Major Oil Company)란 과거 미국의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회사가 1911년 반독점금지법에 의해 수십 개 회사로 해체된 후 석유산업을 주도하던 대기업 형태의 석유회사들을 일컫는 명칭이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석유의 탐사, 개발, 수송, 정제 및 판매의 전 사업분야에 걸쳐 일관체제를 갖추고 폭넓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거대한 다국적 석유회사를 말한다. 반면 스탠다드오일에서 분리•독립한 모든 회사를 ‘독립계(Independent)’라고 불렀다. 이들 독립계 회사 가운데 일부는 종합 일관체제를 갖춘 회사로 성장하여 메이저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독립계’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메이저 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계 석유회사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석유산업의 상류부문인 탐사•개발 사업만을 담당하는 기업을 의미하게 되었다. 메이저는 일반적으로 ‘Seven Sisters’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즉 미국계 엑슨, 모빌, 걸프, 텍사코, 세브론의 5개 메이저 회사와 영국계 BP 그리고 영국, 네덜란드 합작기업 로열더치쉘의 7개 거대 석유회사를 지칭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영석유회사인 토탈을 추가하여 8개 메이저로 불리기도 했다.





메이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때는 공산권을 제외한 전 세계의 석유시장을 대부분 지배하였으나 1973년 제1차 석유 위기 이후 산유국들의 거센 국유화 공세로 세계 석유 시장에서 메이저의 지배력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1979년 제2차 석유 위기 이후에는 한층 그 쇠퇴가 가속화되었다. 더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저유가 시기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심해저지역 등 고비용의 신규유전개발 투자가 어려워졌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기 메이저들을 비롯한 석유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비용절감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메이저 회사간의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최근에는 거대 석유회사를 ‘슈퍼메이저(Super Major)로 불리며, 여기에는 BP, 쉐브론, 엑슨모빌, 로얄더치쉘, 그리고 프랑스계 토탈을 꼽지만 이탈리아계 회사인 Eni S.p.A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 OPEC

OPEC은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se) 의 약자로서 2018년 현재 원유를 수출하는 1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다국적 기구를 말한다. OPEC은 1960년 9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베네수엘라 등 5개 회원국으로 결성되었으며 1965년 이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17년 말 현재 OPEC은 전세계 석유 확인매장량의 약 72%, 세계 석유생산량의 약 43%를 차지하여 국제유가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OPEC은 전형적인 국제적 생산카르텔 조직으로 총회에서 회원국들의 석유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하여 회원국별로 원유 생산량을 할당함으로써 원유수출을 통한 회원국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당시 세계 석유시장을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석유메이저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메이저회사들의 시장지배력이 없어진 후에는 세계 석유소비국들로 이루어진 경제협력기구인 OECD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서방 주요선진국들로 구성된 OECD는 산하에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를 두고 있다. OPEC은 최근 IEA와 세계 석유시장 안정을 위한 협력 차원에서 전문가들간의 관련 회의를 개최하여 석유시장의 동향과 시장안정방안 등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OPEC은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를 두고 있고 총회의장을 협의를 통해 선출한다. OPEC 기구상 최고책임자는 사무총장으로 산하에 사무국과 연구소, 기타 OPEC 홍보 등 지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OPEC은 총회에서 전원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OPEC의 결정은 국제석유시장 및 국제관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특히 전쟁이나 대규모 시민소요 발생은 때때로 석유공급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는 석유금수로 초래된 1차 오일쇼크와 이란혁명으로 야기된 2차 오일쇼크 등 1970년대 2차례 석유위기를 통해 공급중단으로 인하여 전세계가 유가폭등을 경험한 바 있다. 1980년대 OPEC은 목표생산량제도를 채택하였는데, 이는 총회에서 전체생산량을 결정하고, 회원국별 원유생산량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석유 비수기에 목표생산량을 줄이면 가격이 오르고 겨울철 성수기에 목표생산량을 늘리면 가격이 하락하는 기대효과를 반영한 제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후 중국이라는 거대 석유수입국이 석유시장에 등장하면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어 OPEC의 목표생산량 제도는 더 이상 유효한 정책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최근 2013년 이후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석유시장이 공급과잉 상황으로 변화되자 OPEC은 감산을 추진하였고, 2016년 11월 회원국별 경제적 여건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도 감산에 참여하여 55만 8천배럴을 추가 감산하기로 합의하였다.